식객, 음식에 진지함을 許하라
오늘 아침 '신진대사의 정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렀다가, 심심한 눈을 달래주고자 동행한 주간지 '한겨레21(8월5일 제721호)'에서 보게 된 노형석 기자의 '냉면과 파리 만국박람회의 관계는?'이라는 기사 중 아주 멋진 글이 보여 옮깁니다.
17세기 조선의 대문장가였던 장유(1587~1638)의 문집 <계곡집>에 실린 시에 나오는 글인데요. "자줏빛 육수에 냉면(紫漿冷麵)" 라는 시가 있었다는군요... 그 시에서 장유는 냉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높고 시원하게 터진 집 너무 좋은데 별미의 맛에 더욱더 놀라노라 노을빛 영롱한 자줏빛 육수에 (紫漿霞色映) 옥가루 눈꽃이 골고루 내려 배었노라 (玉紛雪花勻) 입에 넣자 향기가 감돌고 (入箸香生齒) 몸이 갑자기 서늘해져 옷을 끼어 입었도다 (添衣冷徹身) 나그네 시름 이제부터 풀어지리니 고향 꿈도 이제 자주 꾸지 않으리라 와.. 어떻게 이렇게 맛을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사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식객(食客)을 보고 좀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맛의 표현'이랄까요.
'초밥왕'이라던지 일본 음식만화를 보면 맛에 대한 표현이 정말 일품입니다. 심지어 영화 탐포포(タンポポ)를 보면 라멘을 음미하는 방법이 나오기도 합니다. 40년간 라멘 먹는 방법을 연구해 오신 라멘의 달인(?)은 라멘 위에 올려진 고명을 순서대로 먹는 법을 설명합니다. 고기에게 사과를 하고 육수를 어루만지고 라멘을 응시하며 식사를 해야 한다는둥.. '겨우' 라멘에게 애정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워낙 모든 일에 세심하고 오타쿠적인 성향이 있어서 그렇기도 합니다만..
그런 '맛'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다양한 표현과 재료에 대한 집착이 있을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가 음식을 '음미'할 여유를 주지 않는듯합니다. 최근에 '천천히 먹기'를 권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다이어트 방법론'으로써의 이유입니다.
한때 보릿고개니 전쟁이니 하며 음식은 단지 끼니로서 존재하였습니다. 하지만 음식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樂'을 위해서 먹을 때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재료와 분위기, 맛을 느껴 볼수 있는 외적 환경들은 어느 정도 갖춘듯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맛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진정 '맛'을 느끼려면 '천천히 먹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요리를 천천히 음미하며 어떤 재료와 양념이 어떤 방법에 의해서 구현되었는지 목구멍의 확장으로만 느낄게 아니라 정말 '五感'으로 음미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행복이 없을 것입니다.
앞에서 장유가 먹은 자줏빛 육수에 옥설이 내린 향기나는 냉면... 이것은 진정 '음미'가 있는 식사입니다. 정말 맛있지 않았을까요? 향기를 느끼는 사람과, 단지 '시원함' '배부름' 만을 느끼는 사람과 같은 냉면이라도 그 가치는 천배 만배입니다. 요즘 와인이 유행하는데, 와인을 먹는 이유도 사실은 음식에 대해 더 좋은 感을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드라마 식객에서 맛에 대한 표현은 뭔가 아쉬웠습니다. 진실로 그 맛이 느껴지는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마땅한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다소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재미를 주기에 줄거리는 매우 탄탄하지만, 맛을 표현하는 느낌은 오히려 주말 식도락 프로그램이 훨씬 나은듯 합니다.
이는 아마 우리에게 '음미'하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합니다. 그래서 표현하는 사람이나, 그 표현을 듣는 사람이나 '어색'하기만 한것입니다. 뭔가 음식으로 장난치는것 같고, 오바하는것 같고, 유치하게 보이는것입니다.
음미하는 문화가 더 정착이 되면, 음식의 장인도 기대할 수 있을것입니다. 100년 가는 식당이 생기고 맛을 보는 유명한 '식객'도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얼마전에 홍콩에서 '식신(食神)'으로 불리는 차이란씨가 한국을 방문한적이 있었는데, 홍콩신문은 물론이고 한국의 일간지에서도 그의 방문을 다뤘습니다. 음식을 평론하는 경지까지 가려면 얼마나 많은 음식을 먹어봤을까요. 내심 부러웠습니다. 정말 행복하겠구나. 저 사람은 물을 마셔도 대자연을 느낄거야라고 생각이 되더군요.
저런 사람이 있기에 요리가 더 발전하는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걸출한 '식신'이 탄생하길 기대하며, 오후의 잡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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