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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FO를 본 후 언어를 재 발견하신 두호리
| 03_영화/수필/수필 - 2008/08/3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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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를 본 후 언어를 재 발견하신 두호리
# Part1. 언어의 재발견
오늘 말이야. 사무실로 차를 타고 오면서 큰 것을 깨달았지 뭐야. 어떤이들은 이미 다 그렇게 알고 있었던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그렇다면 '촌스럽게도' 이제서야 알게 된거지 뭐야.
세상은 인간과 그 외의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그 외의 것들'이 사실 더 큰 것이 세상이야. 뭐 세계(世界)라고 부르면 더 개념이 맞을라나. '그 외의 것들'과 인간과의 구분은 바로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야.
가령,
멍멍이와 사람의 언어가 틀리고 야옹이와 사람의 언어가 틀리고 소나무와 사람의 언어가 틀리고 자동차와 사람의 언어가 틀리고 자동차와 독수리와 토마토와 공기와 바람, 산과 바다, 바위와 자갈.. 모두 우리와 언어가 틀려.
그들에게도 언어가 있냐고? 멍멍이와 야옹이는 알겠는데, 바위와 자갈 따위에도 언어가 있냐고? 글쎄 비생물체라 언어가 필요없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생명이 없다는 것도 '사람'이 정의한것이라. 확언하지 못하겠어. 생명이 없는것에 '언어'가 없다는 정의는 누가 연구한거야?

가령, 나무, 돌, 불에게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다 미친사람 취급해야 하지 않겠어? 金불상에게 절을 한다던지, 염주나 나무 십자가를 신성하게 생각한다던지, 성수나 불로써 악귀를 쫒는 제스추어를 한다던지. 단지 종이로 된 부적이나 달마도 그림은 어떻고? 이런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행위를 하고 있는것이네. 정신병원에 빨리 보내야겠네.
그들은 어쩌면 돌, 나무, 불과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인데 말이야. 그것은 좀 더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지만 말이야.
사람들도 있잖아.. 알고보면, '언어'가 모두 다르다.
종족의 언어를 뜻하는것이 아니야. 단순히 '미쿡' 사람과 '한국' 사람과의 차이를 뜻 하는것이 아니지. 사과를 'Apple'라고 부르지 않아서 '다르다'라는 주장을 하는게 아니라는거지.
내가 말하는것은 우리가 사물에 대해 같은 '정의(定義, definition)'를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뇌에서는 각자 '다른 인식'으로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이지.
가령, "사과는 맛있다"라고 해보자구. 사과의 맛은 어떤걸까? 달콤함? 새콤함? 시원함? 아삭함? 아마 복합적인것이겠지, '달콤새콤시원아삭' 일 수도 있겠지? 좀 더 미친놈처럼 파고 든다면, 달콤지수(糖度) 32% 새콤지수(酸度) 29% 시원함(水分)... 후훗.. 이런것들을 연구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해. 그만큼 복잡하다는거지. 단지 사과 하나 먹는건데..
그렇다고 현실에서 '사과 맛 어때'라고 했는데 '음. 당도가 15brix 정도 되는것 같아'라고 말하는 '미틴사람'은 없을거야.
그냥. '오 맛있는데'라고 하겠지. 근데, 내가 느끼는 맛이 상대방이 느끼는 그대로는 아닐꺼야. 그 넘의 혀와 나의 혀가 다르기 때문이겠지. 내 혀의 돌기가 더 단맛을 느끼게 한다던지. 혹은 더 무딜수도 있어. 그리고 혀만의 문제가 아니지. 뇌로 들어가면 내가 느낀 맛에 대해서 뇌가 막 분석을 할꺼 아니야. 그러면 그것이 무슨 '수치'로 DNA에 저장되는것도 아니고 뭔가 정의할 수 없는 어떤 신호로 기억에 남을거야. 사과를 먹을때마다 그런 신호가 남겠지. 그것이 기억이 되고, 다음에 사과 먹을때 참고 자료가 되겠지. 아마 예전 보다 더 당도가 높은지 낮은지. 이를 판단해서 '맛있다' '맛없다'라는 평가를 하겠지. 그런 차원에서 '맛있다'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감정 표현은 아닌거야.

마찬가지로 '사랑한다'는 말도 그렇지. 아니 오히려 더 복잡하지. '사랑은 맛있다'라는 노래도 있지만, 사랑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눈물처럼 짜거나, 어떤 사랑은 더럽고 냄새날때도 있지. 사랑이란것은 정말 복잡한 감정의 결정체지. 또 'Communication'의 결정체고, 'language'의 결정체야. 그래서 '사랑'을 이야기 하는것은 정말 어려운것이지.
단지, 사과가 맛있다는 말을 하는데도 사람마다 그 뜻이 틀릴진데,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은 물론이고 오감을 뛰어넘은 감정까지 뒤섞이게 되니 얼마 복잡하겠어. 전화로 '사랑해'라고 하는것과, 섹스를 하며 '사랑해'라고 하는것은 정말 천지 차이지. 또 모르는 사람에게 교회같은데서 말하는 '사랑합니다'라는 말과, 부모에게 하는 '사랑해', 아이에게 하는 '사랑해'는 정말 다른 감정들이겠지.
하지만, 이 모든것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어.
# Part2. 지식의 재발견
그러면, 우리는 단지 '사랑'이라는 단어 그대로를 해석하느냐? 아니지. 주변 환경과 함께 연결지어 생각하지. 그것이 바로 '맥락'이라고 하는거야. 하지만, 사람마다 그것을 연결시키는 능력(맥락파악)은 매우 다르거든.
맥락파악은 개개인의 '지식수준'과 비례해. 얼마나 많은것을 알고 있느냐에 따라. 어떠한 현상은 천차만별로 해석이 가능하게 되는것이지.
'지식'이란것은 뭘까? '언어뭉치'라는게 내 지론이야. '언어'란 다른 사람과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개념 공유를 하기 위한 매개체인데.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60억이나 되는 거대한 인구의 사람들이 매일 '언어'를 쓰고 살고 있잖아. 즉, 60억개나 되는 언어박사들이 나와 '개념교류'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 지식수준이란.. 타인의 언어와 자신의 언어가 얼마나 많이 매치(match)되느냐는것을 뜻하는 말이야.
즉, 나는 '태양'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어. 이는 영어로 코쟁이들에게 'SUN'이라고 불리고, 니혼징(日本人)에게는 太陽(타이요)라고 불리지. 그런데 단지 '태양'이라는 단어만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나는 그 사람보다 지식수준이 높지. 물론 '태앙'이라는 단어에 한해서 말이야.
그런데, 이런 단어뭉치들이(언어) 각자 다르게 쌓이면 어떨까? 10,000개의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과 500개의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 분명 엄청난 지식 수준의 차이가 발생 하겠지?
10,000개의 정보를 가진 사람은 1~10,000개 사이의 언어를 알고 있는 사람과 '대화' 할 수 있는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사람은 마치 아이템 처럼 10,000 point 언어만큼의 '삶'을 살게 되겠지. 반대로 500개 짜리 사람은 500 point 만큼 사는거야. (물론 수치는 삶의 가치를 이야기 하는것은 아니야)

그래서 사람들이 '공부'하는거야. 더 많은 언어 아이템을 가지려고, 그러면 "'언어학 또는 언론학'을 공부해야겠네?"가 아니지! 언어학은 내가 앞에서 말한 언어뭉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연구하는거고, 언론학은 어떻게 언어뭉치가 유통이 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야.
실제 언어의 아이템들은 각종 학문들에게 널려있지. 학문은 communication과 무관한게 없어. 경제학은 뭐야. 세상에 경제적 가치가 어떻게 생겨나고 순환되며 조정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야. 이게 왜 필요하겠어. 사람들이 경제라는 언어(개념)를 사용하기 때문이지.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경제'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서야. '경제'라는 놈이 '정체'가 있는게 아니라. 경제라는 '인간 내지 기업과 사회의 행동'에 대한 연구지.
이것은 모두 경제의 '언어'로 구성되어있어. 가령, 돈을 지불한다는 의미는 물건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고, 내가 그만큼의 보상을 해주겠다는거야. 돈을 내면, 개인은 돈 가치만큼 다른 행위(노동)를 통해 그 돈만큼 '벌어야'해. 돈은 '언어'지? 이런 맥락에서 주식도 마찬가지고 환율도 마찬가지야.
음악은 어때? 'Do'라고 부르는 '音'은 단지 알수없는 신호야. 하지만, 이것이 어떤 '맥락'에 있을때는 '특별한' 신호가 되는것이지. 그래서 '도레미'가 되기도 하고 '솔파레'가 되기도 하고. 이는 음의 높낮이를 통해 사람에게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언어야. 국어도, 영어도, 수학도, 사회도, 경영은 어떻고 관광은 어때? 정치와 문화 기술과 과학은? 모두 communication과 관련없는게 없지?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연구하는 모든것이 인간이나 사물 또는 현상과 '언어'를 주고 받기 위함이야.
다 다르니까, 대략 비슷한 현상 또는 내용을 '뭐시기'라고 부르자고(이해하자고) 약속하는거지.
# Part3. 세상의 재발견
결국 인생은 'communication'하기 위한 작업의 반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밥먹는거? 인체를 유지하기 위해 발생되는 장기 신호에 대한 본능과의 대화. 똥싸기? 먹고 먹히며 순환하는 자연 생태계와의 약속된 대화. 일?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기업주와 돈을 많이 나눠갖고 싶은 노동자와의 대화. 정치? 세상을 움직이고 싶은 욕심많은 어떤이와 조용히 살고 싶은 자들과의 대화. 사랑? ?? ?? 뭐지??
여튼.
'언어'라는게 중요해. 모든 세상은 '언어' 때문에 살고 있어. '언어'라는것 정말 신비한 것이지. 모든 개체에 다르게 주어진 '언어', 그만큼 우리 개개인은 매우 Special 하다는 증거야. 어쩌면 세상 모든 이들이 너와 혹은 나와 대화를 위해 별의 별것을 다 연구하고 있다는거잖아?
여튼.
이 글이 말하고자 함이 뭐냐고? 세상 사람들의 언어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다르니 서로 이해하고 살자는거야. 화부터 버럭내지 말고, 저인간이 왜 저런 표현을 했는지, 한 번 들어나 보자고, 그렇다고 그넘이 생각 하는것 처럼 이해야 되겠어? 이해라는것도 단지 내가 갖고 있는 '맥락'속에서나 해석하는거지. 언어의 마법사가 되자.
내가 지난달에 일산 호수공원에서 UFO를 봤어. 진짜로.. 나는 평생 UFO 따위 생각해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정말 미친 따분한 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진짜 미친거 아닌가?

진짜 UFO가 막 날아갔거든. 맑은 하늘에 불빛이 불규칙하게 좌우로 발버둥치며 약 1초간 비행을 하다 사라져버렸어. 혼자 본 것도 아니야. 와이프랑 같이 봤지. 너무 놀라서 별로 믿고 싶지도 않았고, 몇 번이고 와이프에게 봤냐고 눈을 부라리며 이야기 했어. 하지만 둘다 이를 보고 'UFO'가 나타났다라고 소리치진 않았지. 별로 믿고 싶지도 않았고, 뭔가 다른 무엇일거라고 생각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정말 내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거였어.
나 드디어 미쳐버린걸까? UFO가 보이다니;;; -_-;; 이런 젠장. 차라리 귀신을 봤다고 하는것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일텐데. 품위 유지를 못하고 UFO를 봤다는 이상한 소릴 해대다니.
워쨌든간에. 세상이란것 정말 복잡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정말 단순해.. 이제야 깨우치다니..
성철스님.. 정말 대단하십니다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Ps. 이 글의 핵심은.. 사람마다 언어가 서로 '사맛디' 아니하여 참으로 오해가 많이 일어나는것이 인간사라는 .. 엄.. 그래서 외계인을 만나고 싶다는... 매우 시덥잖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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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은 천국에 갔을까?
| 03_영화/수필/수필 - 2007/01/2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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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천국에 갔을까?
세상에서 정치논쟁보다 더 지긋지긋한 논쟁은 바로 '종교논쟁'이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때 꺼내지 말아야 할 이야기로 "정치, 종교, 학교"이야기를 꼽는다. 오늘 우연찮게 '종교'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내들었는데, 뭐 논쟁하고싶은 생각은 아니다. '세종대왕이 천국에 갔건 안갔건 나에게 의미없는 일이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며, 존경스런분임은 말할 나위없다. 이 주제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를 말해보고자 한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은 천국에 갔나요?" 가끔 이런 질문을 듣는다. 기독교에서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를 믿는 방법밖에는 없다"라고 한다. 나 역시 기독교신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있다. 세상에 '구원'이란것이 있다면 그것이 구원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따져묻는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곧잘 '성경'말씀을 인용한다. 그러면 non-christian들은 그런 터무니 없는 소리가 어딨냐고 오히려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망상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만약 인간세계와 신의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차원(dimension)'의 문제다. 세계의 '차원'이 다른것이다. 웃찾사에 띠리띠리라는 안문숙을 닮은 외계인이 나와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가령 헤어드라이어를 자신의 애인으로 소개한다던지, 전화를 받기 위해 코에 손가락을 꽂는 행동을 한다던지, 이런것을 보며 우리는 웃는다.
웃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도 안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행동에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런것을 보고 '차원'이 다르다고 하는것이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이것은 인간세계와 '차원'이 다른 세계이고 이를 설명할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고작 설명할수 있는것은 '성경'이라는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책'이 전부이다.
기독교에서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쓰여졌다고 이야기하고 신도들은 이를 믿는다는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더이상 다른 말을 할필요도 없고 성경으로써 이미 '논리적이해'는 끝났다.
그런데, 성경을 믿지 않거나, 알지 못하거나, 부인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을 설명할 도리는 없다. 어떤 대단한 목사가 나와서 '성경'말씀을 인용한들 그것은 소귀에 경읽기와 같다.
크리스쳔 역시 그냥 '믿는'것이지. 어떤 논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천국을 이야기 하는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 누군가가 '천국의 유무'에 대해서 따져든다면, 그것은 어떠한 이해나 설득도 못시키고 그냥 말싸움으로 끝날것이 뻔하다.
믿음은 논리나 이해가 아니다. 믿음은 단순히 '믿음'이다. 믿기때문에 '믿음'인것이다. 누가 어떤이를 "신뢰"한다고 할때, 그것은 여러 경험에 의한 판단인것이다. 기독교인은 그런 '비논리적 차원'의 경험을 갖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천국'이라는 타차원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가능한것이다.
자.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천국에 갔을까?
기독교의 논리대로라면 매정하지만 세종대왕은 천국에 가지 못했다. 왜냐. 천국은 오직 믿음으로만 갈수 있기때문이다. 무슨믿음이냐? 예수의 존재를 믿는것이다. 예수의 존재는 이미 역사속에 나타났다. 그것을 못믿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으라는것인가? 예수가 온 의미를 알라는것이다.
예수가 온 의미가 무엇인가?
예수는 이땅에 사랑을 전하기 위해 왔다. 일전에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을 통해서 예수가 세상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예수는 세상의 모든 율법을 타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새 계명을 주시기 위해 온것이다.
그는 왜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가며, 이런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온것일까? 여기부터는 즉,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환타지 차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잘먹고 잘살라고 했다.
단!!! 여기서 중요한것이 있다.
인간이 잘먹고 잘사는데 모든것을 허락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었으나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에 대해 신뢰(Trust)하라는 약속이다. 이것을 '에덴동산'의 사과로 약속을 하신것이다. 에덴동산의 사과는 영문성경에 "The fruit of What is good or What is Bad"라고 해석되기도 하고, "The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라고도 해석된다.
이것은 무엇이냐면, 어떤 사물이나 행위 자연에 대하여 판단을 하게 되는 죄악을 일컫는것이다. 창조주는 모든것을 완벽하게 만들었는데, 소위 '원죄(Original Sin)'이라고 하는것은 이것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것이다. 결국 여자인 하와(Eve)는 믿음대신 '의심'을 택했고 그는 '판단'하게 되어버린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은 매우 간단하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자신이 벌거벗었다는것을 '판단'하게 되어버린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에 대한 배반이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인것이다.
창조주에 의해 탄생된 개체가 창조주를 의심하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모든것을 '판단'하게 되는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인간의 잣대로 문화와 도덕적 기준을 세우게 된다.
그러니 세계마다 '善'에 대한 기준이 다른것이다. 가령 한국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아내와 잠자리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부도덕하고 불륜에 해당하며,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징계와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에스키모들에게는 오랜만에 온 귀한손님에게 자신의 아내와 잠자리를 하게 하는것은 "예의"다.
이것은 문화적 판단에 따라 도덕적 기준이 달라지는 유명한 사례다. 즉, '도덕'이란것 '善'이란것은 사회적 기준이며, 인간적 판단이다. 인간의 세계에서 만들어낸 룰인것이다. 그것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경험에 의한 판단이다. 그러니 세상에 절대 '선'이란것은 없는것이다. 즉 Good이란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Good과 Bad를 판단하는것이 '원죄(Origianl Sin)'이다. 기독교에서 가만히 잘 사는 사람보고 "당신은 죄인이요"라고 하니 그것은 누구나 펄쩍뛸수 밖에 없는것이다. 어릴때야 괜히 거짓말하고 친구들이랑 싸우고 그런것들이 '잘못'한것이라고 어른들에게 구박을 받으니, 마침 교회에 가서 죄인이라고 회개하라 그러니 어쩌면 '쉽게' 믿음을 갖게 된다. 물론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에 대한 개념에서 벗어난 맥락이지만, 얼떨결이라도 '믿음'을 시작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나이들어서 '기독교신앙'을 듣게 되면 이것이 참 믿기가 힘들다. 그때부터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 지식, 도덕, 경험, 과학에 맞추어 판단하게 된다. '판단'이라는 '죄'로 인해 어쩌면 구속되어버린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때부터 바로 '천국'이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기보다 힘들다는 말이 적용되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10년간의 신앙생활을 했지만, 친구에게 논리적으로 이해시킬 자신이 없다. 그리고 믿어 본 결과 '논리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계와 다른 '차원'의 세계를 믿는것이다. 그것은 '믿음'이라는 단어로 밖에 설명할수가 없다. 가령 '외계인'을 믿는것과도 같은 맥락일수가 있지만, 외계인은 "외계"에 사는 존재를 믿는것이고, 나는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를 믿는것이다.
그 창조주를 인간의 단어로 "GOD"이라던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것일뿐. 어떤 특정인물에 대한 신앙이 아니다. 물론 '예수'에 대한 신앙은 또 다른것이다. 예수는 '불신'과 '판단'으로 이어진 원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좋지 않은 관계를 잇기 위해 온것이다.
예수는 어찌보면 황당한 말들을 많이 했다. "나를 말미암지 않고서는 천국으로 올자가 없느니라"
이말은 무엇인고하니, '천국에 가려면 나를 믿으라'는것이다. 그 방법 밖에는 천국에 오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일반적인 판단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거 뭐 정말 이렇게 독선적이고 오만하고 비논리적인 이야기가 없는것이다. 정말 터무니없고 욕나오는 소리다.
'지가뭔데...'
그런데 대단한것은 그 말이 통해서 그가 태어난지 2000년동안 이어진다는것이고, 세계 역사상 이렇게 대단한 '사기질'은 없는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것이 바로 믿음이다. 다시 말하지만 믿음은 '논리'로 설명할수 없다. 그리고, 많은 불신자들은 이 '비논리'를 비판하며 믿음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이 '불신'이라는것이다.
뭐라도 믿을만한 논리나 이유가 있다면, 세상에 '기독교'란것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믿음은 '믿음'이다.
세종대왕은 대단한 업적을 남기셨지만, 천국에 가지 못했다는것이 성경적 논리다. 정말 못됐고,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얼어죽을 예수의 기준이지만, 그것이 우리가 이해못하는 '차원'이다.
예수를 믿던 말던 자기판단이다. 예수의 지상명령은 "모두가 믿을때 그날이온다"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는 "모두에게 이 소식이 전해질때에 그날이 올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마음을 열지않고 차원의 다른기준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천국'이라는 단어는 없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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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호리
2007/01/2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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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기독교에게 말한다. |
| 오래전 다빈치코드를 보고나서 전하고 싶었던 말들이지만 내 안에서 아직 확고한 정리가 되지 않아서 쓰지 못했던 글을 써보려고 한다. 블로그에서 기독교를 논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블로그스피어에서 몹쓸짓을 하는 것에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다, 수차례 종교적인 논쟁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상당한 반감을 사게 만들었다. 무엇이 그들에게 기독교가 '개독교'이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 시작이 이단설과 죄사함 이론, 보수적 자.. |
| 널위한약속로부터 2007/01/30 10:19에 트랙백 되었습니다. 삭제 |
| 제목 : 기독교 믿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종교를 믿는다면? |
| 세종대왕께서는 지옥에 떨어지셨을까? 우리 부모님은 지옥에 떨어지셔야 하나? 내 자식들도 나중에 지옥에 떨어져야 하나? 교회에서는 그렇다고 주장한다. 교회 안 나가니까.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교회 나가면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믿는 반기독교 종교가 있다. 이 종교와 기독교는 서로 모순된다. 이 반기독교 종교에 따르면 교회에 나가면 지옥에 떨어지니 교회에 나가면 절대 안된단다. 기독교 교회에서는 '어쨌든 믿는.. |
| 프시케 신전로부터 2007/02/08 02:47에 트랙백 되었습니다. 삭제 |
| 제목 : 비단구두님의 '밀양-함부로 사랑한다고 하지 않기' , 를 읽고 |
| 방금 미디어몹, 문화-영화 난에서 비단구두님의 '밀양, 함부로 사랑한다고 하지 않기', 를 읽고 드립니다.언제나 우리가 고민하는 주제이지요, 종교인이든 아니든 떠나서 말입니다. 형식과 내용의 문제라고 하면 편할까요? 언제나 나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행동들, 우리의 언어들은 과연 진심이란 것과 얼마나한 편차를 내며 서로 평행하게 달리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평행하게 달린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절대 동일체로 진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
| 로망롤랑의 꿈로부터 2007/06/04 13:00에 트랙백 되었습니다. 삭제 |
| 제목 :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생명이 가능한가? |
| 인간의 습성, 오랜 전통, 이런 것들로 진실이 되고 우리는 태어나 살다가 죽어서 먼지가 된다. 아득한 한여름밤의 꿈! 그래서인지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영원에 대한 열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존재란 이런 영원할 수 있는 것이 없어보이는 세계속에서 나날의 순수한 행복, 그리고 기쁨에 집착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행복은 영원한 것에 있지 않으며 이 짧은 생애 속에서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만다. <?php @inclu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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