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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에는 반항하고, 40대에는 반성하라
| 03_영화/수필/칼럼 - 2007/07/2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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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는 반항하고, 40대에는 반성하라
어제 상상플러스에 배철수씨가 나왔다. 난 음악매니아도 아니고, 라디오를 자주 듣는편도 아니라 배철수씨에 대해 뭔가 대단한 기대감이라던지 존경심은 없지만, 늘 보는 식상한 연예인들이 나오는 쇼프로에서 보는 그는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랄까.... 오래된 연예인이지만, 자리에 따라서는 신선해 보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중 배철수씨가 하는 말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정리해본다. 먼저 배철수씨가 한 말을 소개하자면, "20대는 좀 (사회에)반항해도 된다. 그런데 40대(이상)는 투덜대면 안된다. 40대(이상)는 사회를 이렇게 만드는데 일정 책임이 있다. 사과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지론(至論)이다. 심히 공감한다. 아직 배철수씨처럼 연륜과 경험을 가진것은 아니지만, 20대는 반항하되, 40대는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준명언'쯤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의 지론에 대해서 더 많은 말을 이어가고 싶은것은 아니다. 그가 한 말이 나에게 그대로 흡수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쯤에서 내가 하고픈 말은, 나는 어떻게 그의 말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분명, 이 말을 듣고도 전혀 공감이 안 가거나, "그런게 어딨냐"라고 발끈하는 20대나 40대가 있을 수도 있을지인데, 나는 어찌하여 이 말을 받아 들이게 된 것일까.
가끔 이렇게 가슴을 움직이는 말이 있다. 그런 말 중 많은 대중을 감동시킨 말을 모아둔것이 '명언록'이다. 가령 공자의 "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의 친구를 보라"라는 말이나, 뉴턴의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라는 말은 대단히 기발한 발상이나 특별한 문장이 아니지만,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좌우명이 된다던지, 가치관에서 중요한 잣대가 되어 활용이 된다.
어제 배철수씨가 한 "20대에는 반항하고, 40대에는 반성하라"는 말은 나에게 스피노자, 에디슨, 카네기의 명언에 뒤지지 않는 대단한 명언으로 느껴진다. 뭔가 대단한 말을 해서가 아니라, 여러 생각의 잔 가지들을 정리해서 내 가치관 나무에서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전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의 편린(片鱗), "20대들은 펑크를 좋아한다", "40대가 되면 사람들은 안주하게 된다", "대학생들은 자유롭다" 등 등의 생각 가지들이 배철수씨의 말을 듣고 맥락을 잡아 뭉치가 되는 것이다. '맞어, 맞어! 20대는 사회와 국가의 논리와 원칙에 피동적일 수 밖에 없기에 그렇게 만들어 둔 국가와 어른들에게 반항 한 번 할만하지! 40대는 반세기를 살면서 사회를 복잡하게 만든 책임이 있지' 라고 생각이 정리가 되는것이다. 이는 곧 내 가치관의 일부가 되고 가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가치관은 이렇게 만들어지는것이다.
2년 전에 한 세미나에서 주철환 교수(현 경인TV 대표)의 강의를 들었던적이 있는데, 그 분의 말인 즉, "나는 사람들을 많이 칭찬해서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즉시 그것을 내 가치관의 '일부'로 삼았었다. "칭찬을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가 한창 블로그를 하고 있을때였는데, 블로그의 소재들이 주로 비판 글들이어서, 그 소재가 되는 단체나 인물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던차였다. 마침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칭찬을 많이해야겠다"라는 말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던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칭찬'에 그리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즉, 칭찬은 '듣기좋으라고 하는말'쯤으로 생각하는 수용자의 태도가 그 노력을 무색케 만든다. 그리고 오히려 이 사회는 '칭찬'하는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데 문제가 있다.
또한, 별로 '칭찬'할 만한 대상을 찾지 못한데다가, 칭찬을 알아 주길 기대 하고 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첨(阿諂)'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판단의 기준을 변경하게 되는 요인은 새롭게 지각되는 정보와 경험들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칭찬'이란것은 자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해주면 동기부여가 되고 '약'이 되지만,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칭찬'을 하면, '잘보이기 위한' 의식적인 행위가 되기 때문에 별로 좋은 효과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없는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와 판단기준의 변화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에 의해 나올수 있는것이다. 그것이 축적되고 잘 조화 되었을때, 굵은 가치관의 뿌리가 되는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접 할 이유가 있다.
특히 20대에는 많은 지식을 편견없이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20대 부터 특정 사회, 종교, 정치 집단의 논리에 소구되어 편협한 사고를 하게 되면, 그것이 이른시기에 고정 관념으로 굳어져 버린다. 이는 매우 위험한것이다.
여러가지 지식들이 쌓이고, 수 없이 들어오는 지식 정보에 대해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하기도 전에 일정한 공식을 정해두고, 본 공식에 어긋나면 마치 이단 취급해버리는 식의 태도는 사람을 독선적이고 편협하게 만드는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남의 말을 많이 듣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 해 볼 필요가 있는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가고 뚜렷한 주관을 만들어 낼 수 있는것이다. 반대로, 20대 부터 '공자'가 말하는 원칙만을 지키고 살아간다면, 그는 아무리 뛰어난 이야기를 입에서 내뱉어도 '독선'과 '편견'에서 헤어나오지 못 할 것이다.
이 시대는 '유연함'을 요구한다. 우리는 유연할 필요가 있다. 유연하다는것은 '편견'을 가지지 않음을 이야기 하는것이다. '편견'은 단지 특정 집단의 논리를 내세우는것만을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다. 특정집단의 무언가를 주장하더라도, 상대집단의 논리를 듣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편견이 아니다. 아예 쳐다보지 않으려 하고, 틀렸다고 잘 못 되었다고 전제하고 귀를 막아 버리는것을 '편견'이라고 하는것이다.
'편견'을 갖게 된 사람은 '독선'에 빠지게 되고 이는 곧 '오만'을 불러온다.
편견(偏見).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독선(獨善). 자신의 논리만이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일 오만(傲慢).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
많은 지식과 경험을 취득한 사람들은 편견과 오만에 빠질 확률이 낮다. 왜냐하면, 많은 지식과 경험 가운데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 정보가 많았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편견에 빠지기 쉽다. 애초에 가치를 판단 할 수있는 지식정보가 적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자기보다 '유식'한 사람의 논리에 쉽게 빠져든다. 그리고 남이 만들어놓은 강력한 논리구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다른 이들의 논리는 판단 할 수 없기에 들으려 하지 않는다. 곧,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알량한 지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독선적인 인간이된다. 이는 곧 오만을 부른다.
오만은 곧 패망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 '유연함'이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가 되어야 한다. 좌정지와(坐井之蛙)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마침 좋은 외국 격언이 있어 소개한다.
Fools rush in where angels fear to tread. (천사들도 겁내는 곳을 바보들은 마구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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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호리
2007/07/2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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